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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소리를 기리는 행사가 해를 거듭하면서 진채선의 삶을 기억하는 데서 나아가 여성 명창의 역사와 고창 판소리의 뿌리를 다시 살피는 자리로 넓어지고 있다. 19세기 남성 중심의 판소리 무대에 등장했던 진채선의 삶을 오늘의 무대에 다시 올린 ‘제6회 진채선의 날’은 그의 이름을 기리는 행사를 넘어, 고창이 판소리의 역사적 자산을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갈 것인지 묻는 자리로 이어졌다.
사등마을에서 다시 만난 진채선
제6회 진채선의 날 기념행사가 9월1일 오전 심원면 사등마을에서 심덕섭 군수와 군의원, 신유섭 동리문화사업회 이사장, 김영환 고창문인협회장, 사회단체·기관장, 국악인,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와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고창군이 주최하고 진채선기념사업회(회장 라남근)와 진채선선양회(회장 최혜진)가 공동 주관했으며 심원면 기관사회단체협의회가 후원했다. 행사는 진채선의 예술혼과 업적을 되새기는 기념식(진채선 대상 시상, 공로자 표창, 판소리 공연)에 이어 국악 창작공연, 군민 진채선 노래자랑 등으로 진행됐다.
라남근 진채선기념사업회 회장은 환영사에서 심덕섭 군수의 심원면 발전과 고창갯벌 관광 활성화 노력 등을 언급한 뒤 진채선 선양의 방향을 제시했다. 라 회장은 진채선을 “조선 최초의 여류 국창이며 여성 소리의 비조”라고 평가하며 “진채선 국창은 바로 이곳 심원면 사등에서 성장한 고창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에게는 하나의 사명이 있다. 그것은 진채선 국창의 위대한 예술혼과 정신을 선양하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그 첫걸음이 바로 진채선의 날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라며, “오늘 제6회 진채선의 날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아, 지금부터는 진채선기념사업회와 진채선선양회가 하나 된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하여 더욱 체계적이고 힘 있는 선양사업을 펼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진채선의 이름이 고창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나아가 세계 속의 이름으로 빛날 수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최혜진 진채선선양회 회장은 진채선이 여성의 판소리 참여를 연 역사적 의미와 향후 선양사업의 방향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고창 출신인 진채선은 여성 국창의 효시로 판소리에 여성의 참여가 확대되는 새로운 시작을 열었다. 현대 판소리가 우리 전통공연예술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은 데에도 진채선 명창의 등장과 활약이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진채선의 업적을 기리는 진채선의 날이 올해로 6회째를 맞았고, 진채선선양회와 진채선기념사업회가 함께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이제는 진채선 관련 중장기 사업을 구상하고 고창군의 판소리 성역화와 심원면 진채선 기념공원이 하루빨리 추진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 “진채선이 자라고 활동한 고창에서 우리 예술의 꽃이 다시 피어나고, 신재효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많은 명창이 나올 수 있도록 진채선선양회도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심덕섭 군수는 축사를 통해, 진채선을 시대적 한계를 넘어선 선구자로 평가하며 고창의 판소리 문화유산을 미래 세대에 전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심 군수는 “진채선 명창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명창으로 시대의 편견을 뛰어넘어 판소리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선구자였다. 그의 도전 정신과 예술혼은 오늘날에도 많은 국악인들에게 울림과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창은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장으로 진채선 명창의 예술적 발자취가 살아 있는 대한민국 판소리의 성지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켜 미래세대에 전할 책임이 있다”며 “고창군은 판소리 전통을 지키고 진채선 명창의 정신과 업적을 알리는 문화예술 사업을 지속하는 한편, 판소리를 통해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높여 군민 모두가 함께 누리는 문화도시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오늘의 ‘진채선 대상’은 누구를 바라보는가
올해 진채선 대상에는 이난초 명창이 선정됐다. 이 명창은 오랜 세월 판소리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활동하며 뛰어난 예술성과 깊이 있는 소리로 우리 전통예술의 맥을 이어왔다. 1961년 호남의 소리꾼 집안에서 태어나 김상용·김흥남 명창에게 기초를 배웠고, 1980년부터 강도근 명창에게 동편제 소리를 혹독하게 익혔다. 1991년 남도예술제 전국판소리 명창대회 대상, 1992년 남원춘향제 전국명창대회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2020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이난초 명창의 소리는 동편제의 강하고 힘찬 기세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그의 소리를 웅장하고 화평한 동편제 계열 흥보가의 특징을 지닌 것으로 소개하면서,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성실하게 소리를 풀어내는 특징을 설명했다. 진채선 대상이 이난초 명창에게 돌아간 것은 진채선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현재 활동하는 여성 명창의 예술적 계보와 연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행사는 과거의 한 인물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열었던 여성 소리꾼의 길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무대에서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시상과 함께 진채선 선양과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인사들에 대한 표창도 이어졌다. 원진주 진채선선양회 전 부회장과 박성진 심원 사등마을 청년회장에게 고창군수 표창이 수여됐으며, 고행순 심원 정동마을 이장은 고창군의장상, 전귀임 진채선선양회 감사는 국회의원상, 이수범 진채선기념사업회 부회장은 전북특별자치도지사상, 판소리학회장을 역임한 정병헌 박사는 공로패, 김재수 고창군 정보통신팀장(전 심원면 팀장)은 감사패를 각각 받았다.
진채선, 기억을 넘어 오늘의 무대로…기념을 넘어,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시상에 이어 이난초 명창은 판소리 흥보가 가운데 ‘박타는 대목’을 열창하며 기념식의 의미를 소리로 이어갔다. 오후에는 ‘군민 진채선 노래자랑’이 열렸으며 축하공연으로 ‘비조채선’의 ‘채선의 길, 꽃 피니 바람 불고 달 뜨니 구름 인다’가 무대에 올랐다. ‘비조채선’은 진채선의 삶과 예술혼을 전통 소리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국악 창작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심덕섭 군수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제6회 진채선의 날 행사를 뜻깊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진채선 선생의 삶과 예술정신을 더욱 널리 알리고, 고창의 소리문화와 전통예술을 후대에 계승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라남근 회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주민들이 함께 만든 축제의 의미를 강조했다. “축제의 장에서는 우리 국민 누구나 춤추고 노래하며 하나가 되는 흥겨움이 있다. 우리 군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흥이 나고, 그 흥이 서로를 하나로 묶는 힘이 된다”며 “제6회 진채선의 날 행사에서도 즐거움과 흥겨움이 어우러지고 주민들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뜻깊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비가 많이 오는 어려운 날씨에도 행사를 준비한 분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주셨다”며 “축제의 성과는 무대 위에 펼쳐진 행사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쓴 분들과 함께한 주민들의 정성과 노력에도 있다. 그분들이 이번 축제를 통해 함께했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제6회 진채선의 날이 남긴 과제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진채선을 얼마나 크게 기념하느냐보다, 진채선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바탕으로 오늘의 판소리와 다음 세대의 소리로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있다. 기념사업회와 선양회는 중장기 사업과 판소리 성역화, 진채선 기념공원 조성 등을 제안했다. 사등마을에서 시작된 한 여성 명창의 이름이 앞으로 살아있는 고창의 문화유산으로 남으려면, 추모의 하루를 넘어 기록·교육·공연·전승이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번 행사는 그 논의를 계속하는 여섯 번째 매듭점이었다.
1847년 고창에서 시작된 여성 명창의 역사
진채선은 조선 후기 판소리사에서 최초의 여성 명창으로 평가받는 고창 출신 소리꾼이다. 1847년 고창에서 태어난 진채선은 판소리 이론가이자 명창 교육에 힘쓴 동리 신재효의 제자가 돼 소리를 배웠다. 당시 판소리는 남성 소리꾼이 중심이던 분야였지만, 진채선은 웅장한 성음과 뛰어난 기량으로 이름을 알렸다. 진채선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계기는 1867년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판소리를 불러 청중을 놀라게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관심을 받으면서 서울에 머물게 됐다. 이때 신재효가 진채선을 위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도리화가’는 두 사람의 관계와 당시 판소리 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남아있다.
진채선의 의미는 한 명의 명창이 탄생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남성 중심의 판소리 무대에서 여성 소리꾼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후 허금파·강소춘 등 여성 명창이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신재효가 고창에서 판소리를 정리하고 창자들을 교육한 활동과 맞물리면서 고창은 판소리의 중요한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진채선의 이후 행적과 정확한 사망 시점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소리는 고창의 판소리 역사와 함께 이어지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최초 여성 명창이라는 상징성을 넘어 여성의 예술 참여와 판소리의 저변 확대를 보여주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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