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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주에서 처형된 뒤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김개남 장군의 가묘 앞에서 후손들과 지역 주민들이 분향하고 고개를 숙였다. 정읍시는 10월18일 산외면 동곡리 김개남 장군 묘역에서 순국 132주기 추모제를 개최했다. 시가 주최하고 김개남 장군 기념사업회(회장 김두식)가 주관한 행사에는 전국의 동학농민혁명 유족과 관련 단체 관계자, 지역 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학수 시장과 이복형 시의장, 윤준병 국회의원,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송기수 이사장, 정읍시유족회 김형무 회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추모제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기리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이어 추모사와 전통 제례, 분향·재배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김개남 장군을 비롯해 폭정과 외세에 맞섰던 농민군의 희생을 기리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되새겼다. 이학수 시장은 “김개남 장군은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 폭정을 없애기 위해 부패한 권력과 외세의 침략에 맞선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지도자였다”며 “장군의 실천과 뜻을 기리며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가치와 정신을 올바르게 이어받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제가 열린 곳은 장군의 유해가 묻힌 무덤이 아니다. 김 장군이 순국한 뒤 시신이 수습되지 못하자 후손들이 1995년 산외면 동곡리에 조성한 가묘다. 순국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후손들의 손으로 추모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정읍 산외면 출신인 김개남 장군은 전봉준·손화중 장군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핵심 지도자였다. 1894년 3월 백산에서 전봉준을 총대장으로 한 동학농민군의 지휘관인 총관령으로 추대됐다. 같은 해 9월 농민군이 다시 봉기하자 군사를 이끌고 청주 병영을 공격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김 장군은 정읍 산내면 종성리 일대로 피신하던 중 체포돼 전주감영으로 압송됐다. 1894년 음력 12월3일 전주에서 처형되면서 그의 항쟁도 막을 내렸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봉기했던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마지막은 유해조차 거두지 못한 순국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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